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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보(설교요약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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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교요약 내용 중에서.. 


  • 성경책이 하나님을 소개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, 독자들은 자꾸만 사람들 이야기로 초점을 옮기게 된다.
  • 마태복음 1장은 인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면서,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신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게 한다. 우리는 마태복음 1장을 읽으면서 자꾸만 “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선택하시는가?”를 찾아보려고 수고한다. 성경에는 없는 기준을 찾으려는 수고일 뿐이다.
  • 사람들은 신앙적인 사람과 신앙적이지 못한 사람,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,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,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은 사람,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과 예배하지 않는 사람, 믿음이 큰 사람과 믿음이 작은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 등으로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.
  •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만, 자신이 그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과 칭찬과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신앙관의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.
  • 본문을 읽는 독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, 즉 하나님의 기준과 의도하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은, 예수님을 죽게 했던 나쁜 짓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‘어떤 사람’ 또는 ‘어떤 행동’이다. 그래서 복음서를 읽은 사람들이 신앙고백이라고 만든 사도신경의 내용에는 ‘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,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’를 포함시켜서 “본디오 빌라도”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죽게 했던 나쁜 짓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. 그러나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있었다.(18)
  •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로마의 법에 죄로 판단할 수 있을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고, 다만 유대민족의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시기 때문에 예수가 자신의 앞에 끌려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. 때문에 당연히 자신을 변호할거라고 생각했던 예수께서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는 것이 빌라도에게는 오히려 충격이었다.(13-14)
  • 23절, 빌라도는 합리적인 판결을 시도했지만,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군중이 받아들이지 않았다. 빌라도는 자신의 위치와 명예를 지키고 싶어 하는 일반적인 정치가였을 뿐이다. 더구나 죄 없는 예수에게 형벌을 내리는 ‘나쁜 짓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전형적인 죄인의 모습도 볼 수 있다.(24)
  • 25절을 읽고 무식한 사람, 나쁜 사람들, 천벌을 받을 사람들, 예수님을 핍박한 사람들 등으로 생각하고 ‘나쁜 사람’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.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, 그들은 다만 하나님을 잊어버린 불쌍한 죄인일 뿐이다. 하나님께서 희생하셔 구원하셔야 하는 그 분의 백성, 그 분의 사람들인 것이다.
  • 기독교는, 교회는 사람들이 세워놓은 ‘사람을 구분하는 기준’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. 하나님을 잊어버려서,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 수고하는 곳이 교회여야만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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